2015년 9월 4일 금요일

한국에서 접하는 인도 이야기 7

2015년 5월 28일 목요일로 조선 일보에서 인도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접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신문에서 인도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지만 서도 5월 28일이 마지막으로 최근에 한국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인도 이야기 였다. 최근 ALC가 열리고 모디 인도 총리가 한국과의 교류를 넓혀가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 곳곳을 채웠다.

얼마전 나렌드라 모디는 총리가 된지 어느 덧 1년이 되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모디 총리의 특집기사들을 쏟아내고 그리고 신문의 1면이 그에 대해 꾸며지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모디 총리는 많은 사람의 격찬을 받기도 했다. "그가 집권한 1년 동안 인도는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이코노미스트) 그리고 또한 (뉴욕타임스)에서는 "공무원들이 기업가들을 못살게 구는 문화가 1년 사이 많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평판들을 보면 모디 총리는 성공적으로 인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 시키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는 빈곤층에 많은 관심을 주며, 빈곤층에 은행 계좌를 1억개 이상 만들어준 행동에 대해 의미있는 변화로 주목을 받았다. 이런한 행동을 통해서 연료 그리고 음식 등 현물로 정부 보조금을 주던 오랜 관습을 없애고 현금을 계좌 이체하는 방식으로 모디 총리는 보조금 수급 비리를 원천 차단하면서 투명성을 끌어 올리려는 조치를 취하였다. 


모디 인도 총리에 대한 좋은 평가들고 많지만 그가 혼자 하는 '1인 밴드' 식 개혁을 하려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한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가 '1인 밴드'식의 개혁을 했기에 1년안에 인도가 전체적으로 크게 성장 할 수 있었고 그리고 다른 나라의 집중을 받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며 그룹으로 한 나라를 발전 시키려 했으면 아마 그는 모디노믹스라는 타이틀 조차 가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인해 인도에 있는 소비자들의 경향 또한 달라졌다. 항상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던 사람들이 더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도 소비시장은 점점 고급화가 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회사인 현대 자동차에서도 인도 사람들의 새로운 취향을 고려해 i25라는 소형 SUV로 인도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 모디 총리의 힘으로 인해 16년만에 인도는 중국의 경제 성장률을 추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경제성장률. 인도 승용차 급별 판매 비중.한 지도자의 올바른 정책이 정말 많은 것을 변화하고 관심 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 하는 것에 대해 난 정말 놀랍게 받아 들였다. 이런 기사들 그리고 내가 살았던 인도가 앞으로 많이 발전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나중에 인도를 방문 하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디 총리의 업적들을 보면서 리더의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었다. 미래에 국제적인 리더가 되는 것이 꿈인 나에게 모디 총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모디 총리로 인해 앞으로 인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 할지 매우 기대가 된다. 

한국에서 접하는 인도 이야기 6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조선일보에서 모디 인도 총리의 경제 정책에 대해 읽어 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보기 힘들던 모디노믹스 (Modi-nomics)란 말을 언로에서 자주 볼수 있게 되었다. 기사에서 읽게된 모디노믹스의 정의는 '인도 총리의 이름과 경제라는 의미의 이코노믹스가 합성된 신조어로 현 인도 총리의 경제 정책을 지칭 하는 말' 이라고 한다.


모디 인도 총리 말고도 예전에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수행하던 시절 추진한 경제 정책을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고 부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최근 일본 총리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 정책 또한 '아베노믹스(Abenomics)' 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식의 용어는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기사에서 따르면 "이전 정부와 뚜렷이 구분되는 경제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에게 수식어 처럼 붙는 말" 이라고 한다. 이렇게 특정한 이름을 가진 경제 정책들은 눈에 띄는 달라진 점을 세계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장 주목 받는 경제 정책은 바로 '모디노믹스'이다.

모디노믹스가 실행 된지 1년 안에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뛰어 넘은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
'모디노믹스'가 본격적으로 인도전역에 실행된지는 1년 정도 지났다. 그가 모디노믹스를 실행한 1년동안 인도의 잠재력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뒤 많은 국가들이 인도와 교류를 하기 원하고 인도의 힘을 빌려 인도와 함께 경제적인 부분에서 성장 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가 우리나라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교류를 제안 한 것은 우리나라에게 큰 이익을 안겨 줄수 있는 지나가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 행운을 놓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접하는 한국 이야기 5

 2015년 5월 21일 목요일에 신문에는 모디 인도 총리가 아닌 인도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그는 1980년대 인도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아동 노동 착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노동 착취를 당하던 어린이들을 탈출시켰고, 네팔 그리고 방글라데시 등을 돌며 '아동 노동을 근절하자' 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의 도움으로 인해 약 8만명의 어린이들이 학교로 돌아가 교육을 받고  그리고 140여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조직 '아동 노동을 근절하는 글로벌 행진'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들로 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 방문해 한국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큰 꿈을 가지되, 나 자신만이 아닌 이웃과 사회를 위한 큰 꿈을 꾸라"고 말했다. 이 말을 통해 21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자신들만 생각하는 현실이 제일 먼저 생각 났다. 아마 그래서 카일라시의 조언이 현대 사회에서 자신들만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카일라시가 행복에 대해 또 다른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행복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냐가 아니라 얼마나 줄 수 있느냐에 따르는 것이다. 한국이 지금까지 성취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는 그 성취를 어떻게 지구촌에 돌려주는냐를 고민할 시점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난 그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낀 것인지 아님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했는지에 대해 내 자신을 직접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정말 그가 말한 것 처럼 이제 한국은 우리의 힘을 키우는 데만 집중 할 것이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성장한 만큼 다른 나라들또한 성장 할 수 있게 도와 줘야 한다고 카일라시와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성장한 만큼 우리나라의 시민들의 행복 지수는 떨어진 것이 사실 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취업 문제 그리고 대학 입시 등 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여러 사람이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과거에 비해 나라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낮은 행복지수에 비해 방글라데시 그리고 네팔등 빈곤한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오히려 높다고 카일라시는 말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개개인에만 신경 써야할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과의 관계가 돈독함을 쌓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과 우리나라의 경제를 같이 발전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접하는 인도 이야기 4

2015년 5월 20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제 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가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막했다. ALC는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힘을 주제로 개최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세계 각국 연사들은 '유라시아 평화와 번영, 공존의 꿈은 한반도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모두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평화를 되찾아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입장은 북한이 우리나라와의 도발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내미는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이외에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그리고 중국의 탕자쉬안 전 외교 담담 국무위원은 아시아는 협력과 평화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중국의 꿈은 아시아와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아시아 운명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리더들, ALC에 모이다 -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제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가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막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국내외 인사 1000여명이 연단에 올라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맨 앞 테이블에 왼쪽부터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카타르재단 이사장(카타르 국왕 모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근혜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이 앉아 있다. /주완중 기자
세계의 리더들, ALC에 모이다 -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제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가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막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국내외 인사 1000여명이 연단에 올라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맨 앞 테이블에 왼쪽부터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카타르재단 이사장(카타르 국왕 모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근혜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이 앉아 있다. /주완중 기자
한반도의 평화가 아시아 전체 대륙의 평화를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 나에겐 새롭고 신기한 사실 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가 분단 국가 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쟁의 가능성을 주면서 불안감을 안겨주는 건 사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조그만한 나라가 아시아 전체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꽤 큰 규모의 ALC가 열리고 세계 각국 연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우리나라가 꽤 많이 성장 했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모디 총리는“아시아는 성장할수록 부(富)를 이웃국가와 나눠야 하며, 이 원칙을 인도의 정책에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모디 인도 총리의 ALC 기조 연설
모디 인도 총리의 기조연설로 ALC는 시작 되었다. 그가 주장한 주요한 생각은 "아시아는 성자할수록 부를 이웃국가와 나눠야 하며, 이 원칙을 인도의 정책에도 반영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진행해야한다고 했을때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나라와 북한이 계속되는 대립 그리고 분쟁을 하는 것은 절대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한반도가 작은 나라이지만, 한반도에서 시작되는 분쟁이 커져서 세계 3차 대전이 발생 할 수도 있다는 생각또한 들어서 북한과 함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문제인것이 실제로 와 닿았다.

모디 인도 총리는 한국의 여러 기업의  CEO만 10여명을 만나 협력의 관계를 넓혀갔다. 내가 비록 모디 총리를 직접적으로 만나서 자세히 그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요번에 신문을 통해서 알아 차릴 수 있던 모디 총리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특징은 그가 한 말들은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만의 특징인 것 같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인도가 1년 안에  아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나도 말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수 있게 지식과 믿음을 쌓아서 나중에 국제 적으로 유명한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볼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한국에서 접하는 인도 이야기 3

2015년 5월 19일 화요일에는 Asian Leadership Conference에 대한 기사가 아닌 우리나라의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만남에 대한 내용과 그리고 모디 총리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와의 교류를 결심하고 모디 총리와의 협의로 인해 본격적으로 인도와 우리나라는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오래전 부터 현대 자동차, 삼성, 그리고 엘지 등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 자리 잡았지만 그것 보다 더 많은 교류를 이어 나갈 것 같다. 우리나라와 인도는 서로를 지지하고 믿으며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서로를 위해 힘쓰고 있어서 빠르게는 아니지만 양국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방한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 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로 높이고 경제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기로 했다."

"넥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인도는 12억명의 인구 대국으로 비동맹외교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남북한 통일'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한반도 평일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박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했다, 또한 경제 분야에서 두 정상은 내년 상반기까지 한, 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개선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또 한국 기업의 인도 인프라 사업참여를 위해 100억달러 규모의 '금융 지원 패키지'에 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공식 환영식장으로 이동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도와 같이 협력하면 우리나라도 다방면으로 더 강한 힘을 가지며 지금 보다 더 뛰어난 나라가 될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아주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인도가 다른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게 먼저 기회를 주어서 한국인으로서 영광으로 느껴졌었다. 이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을때 우리나라는 인도와 많은 부분을 발전 시키고 서로에게 이익을 줄수 있는 좋은 상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디노믹스가 힘을 받으면서 해외에선 인도가 중국을 뛰어넘는 신흥국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모디 총리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인도를 미래 제조 강국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한국보다 나은 파트너는 없다'며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8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 그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인도인들의 손을 잡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이날 낮 서울 경희대로 가서 전국서 모인 인도인 3000여명을 만났다. /뉴시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8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 그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인도인들의 손을 잡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이날 낮 서울 경희대로 가서 전국서 모인 인도인 3000여명을 만났다. 
"한국 속 인도인들이 들썩였다, "제이(Jai. 만세) 모디." 경제적 그리고 국가 간의 관계를 떠나서 모디 총리의 인간적인 부분 또한 접할 수 있었다. 모디 총리는 어떤 나라를 방문하든 항상 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과의 만남을 가진다고 한다. 이런면에서 그가 정말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인도 경제 발전에 노력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총리라는 직위에 있는 모디 총리는 자신의 동포들을 평소에 알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인사하고 반겨주는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놀라웠다. 그리고 모디 총리에게 인사하는 동포들 또한 모디 총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해 하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따듯한 풍경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거 같아서 부럽기도하고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열차 문이 열릴 때마다 한 무리의 인도 사람들이 쏟아 졌다, 이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이날 한국을 국빈 방문한 고국의 총리 나렌드라 모디, 모디 총리는 해외 순방 때마다 고국 동포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왔다. 1박 2일의 짧은 한국 방문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가기 직전의 시간을 쪼갰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국에서 접하는 인도 이야기 2

2015년 5월 18일 월요일에 Asian Leadership Conference 는 열리기 하루 전이였다.

이 Asian Leadership Conference는 해외인사 모디 총리를 비롯해 80명이 참석 하고 역대 최대의 규모로 열렸다.

이날 신문의 첫폐이지는 모디 총리의 단독 인터뷰로 장식 되었다. 이날 신문의 첫 제목은 나의 흥미를 바로 낚아챘다. 그 제목은 바로 "한국은 인도 발전에 영감을 주는 나라"이였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도움을 주고 발전하는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정말 큰 영과으로 느껴 졌었다.

사실 내가 인도에 살면서는 인도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 몰랐다. 그래서 아마 우리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해줘서 또 한번 놀랐던것 같다. 그리고 비록 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건 아니지만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졌고 이 신문으로 시작한 아침이 매우 새롭게 느껴 졌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2일(현지 시각)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한국으로부터 오랜 기간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한국의 ‘제조업’‘인적 자원 개발’‘행정 구조’등 세 분야에서 인도의 성공 열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18일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19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제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다. /뉴델리=오종찬 기자
사실 나도 인도에 처음 도착해 집을 이사하고 가구점을 돌아다니면서 놀랐던 것이 있다. 조금 과장 해서 말하자면 인도 사방에서 한국의 제품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현대 자동차 부터 시작해서 삼성 전자제품(텔레비전 그리고 핸드폰 등) 그리고 LG 텔레비전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 느낀 것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인도를 알아보고 제품 그리고 회사들을 인도에 정착하게 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자라트 주지사 시절, 그는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해 '모델로 삼을 나라가 어디인가' 하고 자문했다고 한다. 답은 '한국' 이었다. 그는 한국을 '영감 주는 나라'라고 정의 했다, 지금 한국 현대차가 만든 자동차가 인도 전역에 있습니다. 수많은 인도인이 삼성 스마트폰을 들고 있고, 수많은 인도인의 집에 LG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손길은 이미 모든 인도 가구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의 프로젝트에서 한국보다 나은 파트너는 없습니다."

나렌드라 모디가 인도의 총리가 되셨을 때부터 그는 그만의 방법 그리고 프로젝트를 인도를 발전 시키고 있다. 자세하게 모디 총리의 생각을 읽고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간략하게만 보아도 인도는 충분히 성장하고 강한 국가로 발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도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큰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도의 대부분의 많은 인구가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대조되게 인도는 젊은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많다. 이 말은 즉 인도에게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일꾼 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일꾼들과 함께 인도는 곧 크게 성장 할 것 같다는 내 개인 적인 생각이다.

 지난달 독일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왼쪽) 인도 총리가 하노이 산업박람회장을 찾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메이크 인 인디아’로고 화면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는 모디노믹스(Modinomics)로 불리는 담대한 개혁 정책을 통해 인구 12억명의 대국을 경제 강국으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우리의 가장 큰 프로젝트는 인도를 미래의 제조업 강국으로 키우는 ' 메이크 인 인디아 (Make in India)' 라고 말했다, 투자 대상국으로 인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분석이다. 총인구의 50% 이상이 25세 이하인 '젊은 나라'라 는 점, 제조업 시간당 평균 임금이 0.92달러로 중국(3.52)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점, 중국처럼 합작 회사 설립 의무 없이 직접투자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이점이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길 한국은 인도와 얼른 손을 잠아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 21세기의 인도는 우리가 알던 예전의 인도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인도는 인도와 한국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먼저 인도에서 다가와 줄때에 우리나라는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도와 같이 손을 잡으면 우리나라의 경제 또한 인도의 경제와 함께 같이 올라 갈 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일환 한국전력 인도 지사장은 '인도가 한국에 주는 시간이 많지 않다. 바로 지금이 골든 타임'이라고 했다, 이 대사는 '모디 총리 취임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는 경제성장률이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며, 향후 1년 이내에 전 세계에서 '뜨는 인도' (Rising India)라는 칭호를 받게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인도의 지난 4분기 (2014년 9~12월) 7.5% 성장하면서 같은 기간 중국의 성장률(7.3%)을 앞질렀다."

경제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우리나라는 인도와 역사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씨는 역사에서 가야국 첫 왕비가 되었던 고대의 인도 공주이다. 그래서 모디 총리는 우리나라와의 혈연을 강조 하고 양국이 지금 허황옥 왕비에 대한 뮤지컬 제작을 협의 중이다. 이후 허황옥은 지금도 인도 현지 에서 '한국과의 각벽한 인연'을 떠올리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 뮤지컬이 개막한다면 난 내가 살았던 인도와의 관련이 있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꼭 보러 갈 계획을 하고 있다. 상상하는 거지만, 이 뮤지컬은 왠지 인도의 화려함과 한국의 화려하지만 동시에 수수함이 섞이면서 아주 큰 흥행을 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인도 문화부가 슈리라트나 공주와 김수로 왕의 결혼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해 한국 측과 협의 중'이라는 '깜짝 계획'을 밝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국에서 접하는 인도 이야기 1


이날 신문의 국제 부분에서 모디 총리가 시진핑 칭화대에 간 것을 볼수 있었다. 중국을 방문한 모디는 중국과의 60년 동안 계속 되었던 국경 분쟁을 해결 하려는 목적인 것 같았다. 사실 난 실제로 중국과 인도가 서로 국경 문제 때문에 좋지 않은 관계를 갔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신문의 기사를 읽고 난후 상황이 꽤 심각 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달 전 Asian Leadership Conference가 열리기 몇일 전부터 신문에 인도 총리 모디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때 부터 계속해서 한국 신문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인도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2015년 5월 16일 토요일 조선일보 제 29348호 에서 내가 인도에서 귀국해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인도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히말라야 지역의 국경 분쟁으로 전쟁까지 치렀다."

리커창 총리와 모디 총리(AP=연합뉴스)
이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는 중국에 방문하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하려는 것을 기사를 통해 접하수 있었고 모디 총리는 정말 진심을 다해 잘못된 점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 가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60년 넘게 냉랭했던 양국 관계는 시진핑 주석과 모디 총리가 집권하면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날 모디 총리는 리커창 총리를 만나 국경 분쟁의 악화를 막는 조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항공, 우주에서 지진까지, 즉 하늘부터 땅까지 협력하기로 합의 했다."

긴 분쟁의 시간에 비해 인도와 중국의 사이는 비교적 빠른 시일내에 개선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다방면으로 두 나라는 교류를 이어가겠지만 가장 먼저 문화적인 교류를 시작한다고 예정했다.  물론 아직 확정이 아닌 예정이지만 그래도 결과 적으로 두 나라의 사이를 조금더 가까이 만들어 줄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흥미롭게 느껴진 사실은 두 나라가 교류를 시작할때 다른 측면이 아닌 문화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보통 나라와 나라간의 교류를 시작하면 경제적인 부분에서 시작 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적 측면 일것 같아서이다.

"양국은 이날 '대당 현장' 이란 제목의 영화를 공동 제작한다고도 밝혔다. 인도에서 불경을 구해왔던 당나라 고승 현장 법사가 소재다. 양국은 또 '쿵후와 요가'라는 영화도 함께 제작할 예정이다."

아주 많은 것이 최근에 빠르게 결정 되어가고 있지만 두 나라가 잘못된 방향이 아닌 아주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나만의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기사를 보면 모디 총리가 좀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모디 총리가 일방적으로 중국과의 화해를 원하는 줄 알았지만, 중국의 리커창 총리 또한 모디 총리에게 간접적으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한것 같다.

"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런 영접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이 모디 총리에게 '미국 대통령급' 예우를 한것이다, 시 주석이 준비한 저녁 만찬은 채식 주의자인 모디 총리를 꼼꼼하게 배려한 메뉴로 구성됐다. 고기는 빼고 두부, 버섯, 죽순 등으로 만든 요리를 테이블에 올렸다."
이런 방향으로 중국과 인도가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두 나라가 같이 힘을 합치면 두 나라가 같이 아주 강력한 나라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을 따라잡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어쩌면 평생 따라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은 후엔 어쩌면 미국이 있는 G1자리가 변화할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중국과 인도가 '인구 26억 경제권'을 가동할 경우, 시 주석 말대로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두개의 엔진"이 탄생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을 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인도 총리가 14일 오후 당나라 수도였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과거 장안)에 입성하자, 당나라 옷차림의 궁녀들과 황금색 갑옷과 투구 차림의 의장대가‘당(唐)’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모디 총리를 환영하고 있다.
중국을 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인도 총리가 14일 오후 당나라 수도였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과거 장안)에 입성하자, 당나라 옷차림의 궁녀들과 황금색 갑옷과 투구 차림의 의장대가‘당(唐)’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모디 총리를 환영하고 있다. /신화 뉴시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인도의 주요 도시 3 - 첸나이 (마드라스 Madras) 두번째 이야기

첫번째에서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마리나 해변, 센 토마스 성당, 그리고 EA와 피닉스 몰은 첸나이 시내 근처 혹은 시내에 지내면서 관광 할 수있는 장소 들 이었다. 오늘 두번째 이야기 에서는 차나 버스를 타고 첸나이에서 1시간 혹은 3시간 정도 들어가야 하는 볼거리를 소개하려 한다.

조금 멀리서 무료로 구경한
마하발리푸럼 사원
먼저 차로 이용해 1시간 정도 달려가면 마하발리푸럼 (Mahabalipuram) 이 라고 불리는 기념물 군을 볼 수 있다. 이 기념물 군은 7세기 부터 9세기 동안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 했다. 마할발리푸럼 사원은 입장료를 끊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할 수는 있지만 표를 끊지 않고 밖에서 구경해도 충분해서 나는 밖에서만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하발리푸럼 사원에서 조금 벗어나면 해변이나오는데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하고 뚤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해가 너무 뜨거워서 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하발리푸럼에 가면 크리슈나의 버터볼 (Krishna's Butter Ball)이라는 곳 또한 유명한데 여기는 직접 가보지 못해서 아쉽다. 여기에 가면 아주 큰 돌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다고 한다. 아슬아슬하게는 서있지만 절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마하발리푸럼를 조금 못가서 근처에 마리나 해변 보다 깨끗하고 물놀이 하기좋은 해변을 포함한 여러 리조트 들이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알고있는 리조트는 타지 비반타(Taj Vivanta) 그리고 템플 베이(Temple Bay)라는 곳이다. 이 리조트들이 가지고 있는 해변가는 마하발리푸럼 사원 해변과 이어져 있다. 그래서 사원 근처 해변에서 왼쪽으로 쭉 보면 빌라 형태로 되어있는 리조트들을 볼 수 있다.
Temple Bay 리조트 입구

Taj Vivanta 리조트 입구

폰디체리에서 볼수 있는 노락벽 집
첸나이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폰디체리라는 인도안에 있는 작은 프랑스 마을이 있다. 폰디체리는 자유분방한 프랑스 식민 마을의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다. 자갈 깔린 도로와 노랑색의 집등이 유럽에 있는 작은 마을을 떠올릴수 있게 해준다. 인도의 작은 프랑스 마을이라는 별명 답게 유럽풍의 갤러리와 상점, 그리고 레스토랑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첸나이 시내와다르게 길거리가 깔끔하다.


폰디체리에 가면 사람들이 꼭 한번씩은 들리는 장소가 있다. 그 장소는 바로 오로빌 이다. 오로빌은 공동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르빌 안에 들어가서 살려면 특정 특기가 있어야 하며 마을에 있는 위원회가 입주 자격을 심사해서 통과해야만 들어가서 살수있다. 오로빌에 처음 들어갈때는 개인 재산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오로빌에 입주한 후 부터는 개인 재산의 개념을 없앤다. 모든 수익을 마을 사람들과 나눠쓰며 각자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로빌에 모여있다. 다시한번 간단하게 말하면 자연 친화적이고 인종을 초월하며 지구 공동체를 꾸미며 자급자족 하는 곳을 오로빌이라 할 수 있다.

오로빌 중심에 있는 명상 센터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

현재 오로빌은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라는 명상 센터를 중심으로 오로빌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마트리만디르는 인터넷으로 미리 명상을 하고 싶다고 점수를 하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명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고 가면 그냥 밖에서 보면서 산책만 할 수 있다.

인도의 주요 도시 2 - 뭄바이 (봄베이 Bombay)

뉴델리 다음으로 소개 할 도시는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주도인 뭄바이다. 원래 이름은 봄베이(Bombay) 였던 곳이 영국인들에 의해 1995년에 뭄바이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인 뭄바이는 인도의 역사를 주도해온 도시이다.

1885년 인도 독입운동의 모체인 인도 국민회의가 열렸던 역사적인 곳이며, 인도 민족자본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또한 약 13,478,447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로 경제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도를 대표하는 대부분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뭄바이는 한마디로 인도 경제를 지탱 하는 거대도시 이다. 이런 거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극심한 빈부 격차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빈부격차를 가장 눈에 띄게 알 수 있는 것은 고층 빌딩에 사는 거주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뭄바이에서 가장 먼저 고층 빌딩들을 건설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고층빌딩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외국인 사업가들과 의사, 대학교수, 영화배우 등의 고소득자에게만 해당된다. 반대로 생활 빈곤자들은 북쪽으로 밀려나 카트코파르(Ghatkopar) 나 안데리(Andheri) 부근에 빈민가를 형성하였다. 이 빈민가는 폭력배들이 많아 일반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수 있는 지역도 아니다.

물론 뭄바이에도 고층빌딩을 제외하고 방문 할 수 있는 관광지는 여러 곳이 있다. 사람들이 뭄바이에 가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들은 바로 도비가트, 타지마할 호텔,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그리고 간디 기념관 등이 있다.

Gatesway of India
게이트 오브 인디아 (Gateway of India) 1911년 영국와 조지 5세 내외가 인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진 뭄바이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타지마할 호텔 앞 뭄바이만의 아폴로 부두에 서있는 거대한 문이다. 높이는 26m인 문 양옆에 보조문이 있다. Gateway of India주변에는 공원이 있어 뭄바이 시민들이 휴식을 가질 수 있다.
타지마할 호텔

Gateway of India 옆에는 인도 뭄바이의 고급 호텔인 타지마할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은 설립 된지 100년이 넘었고, 565개의 객실이 있다. 1903 12 6일에 문을 열었다. 인도를 방문하는 세계의 정치가 및 왕족과 귀족, 유명 인사들이 이 호텔에서 머문다. 2008년에 호텔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살해되었다. 특수 부대가 투입되어 3일 후 진압되었지만 관내가 손상되었고 테러로 인해 일어난 화재로 건물이 손실 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 모델링을 하여 깨끗하고 화려한 실내를 볼 수 있다.  

도비 가트
뭄바이에서 본 관광지들 중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곳이 바로 도비 가트 이다. 도비 가트는 인도에서 가장 큰 빨래터이다.

도비란 빨래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빨래 하는 사람을 신분이 낮은 사람으로 취급한다. 도비 가트란 큰 빨래터 안에서도 비누칠만 하는 사람, 헹구기만 하는 사람, 널기만 하는 사람 등 사람들마다 맡은 역할이 나눠져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그래도 도비 가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만 해낸다. 도비 가트란 빨래터는 인도의 상황을 보여주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란 영화에도 나와 더 실감나게 관광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뭄바이의 볼거리는 간디 기념관이다. 간디 기념관은 실제로 간디가 거주하던 집을 조그마한 박물관 같이 꾸며서 많은 관광객들 그리고 현지인들이 무료로 관광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간디 기념관은 1917~1934년 간디가 간디 운동 본부로 사용했던 집이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1층은 간디의 저서와 그의 사상에 관한 책들이 있는 도서관이 있고, 2층에는 간디가 사용했던 방이 보존되어 있어 그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간디 박물관 관리인

간디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

밖에서 보는 간디 박물관 

주도인 뭄바이를 약간 벗어나 마하라슈트라주 북서부에 위치한 불교 동굴 사원인 아잔타 또한 인인도 방문했을 때 구경하기 좋은 관광지 이다. 아잔타 석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되어있고 실제로 보면 믿지 못할 멋있는 풍경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아잔타 석굴을 방문한 다음 아루랑가바드를 지나 서쪽으로 가서 엘로라 석굴도 같이 관광하면 아주 좋은 여행 코스이다. 엘로라 석굴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아잔타 석굴과 마찬가지로 엘로라 석굴 또한 직접 가서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감탄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엘로라 석굴 중 16번째 석굴

아잔타 석굴

2015년 5월 9일 토요일

인도의 주요 도시 3 - 첸나이 (마드라스 Madras) 첫번째 이야기

마지막으로 소개 할 도시는 인도 타밀라두 주, 벵골 만 연안에 위치한 첸나이 이다. 첸나이의 원래 이름은 마드라스였다. 마드라스라는 이름의 정확한 역사는 남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디서 마드라스라는 명칭이 나왔는지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알려져 있다. 1996년 주 정부는  마드라스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첸나이로 바꾸었다. 첸나이는 인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며 남 인도에서 가장 핵심 적인 문화, 경제, 그리고 교육을 담당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자동차 산업이 제일 발달한 곳이 첸나이 이다. 첸나이는 동남향 쪽 해안에 위치해 남인도로 향하는 관문이라고도 한다. 해안가에 위치한 첸나이에서 볼거리들은 마리나 해변, 센 토마스 성당, 첸나이에서 조금 벗어나있는 마할발리 푸럼, 첸나이에서 조금 더 벗어나 있는 폰디체리, 그리고 첸나이 시대 쪽에 있는 쇼핑 몰 등 이 있다.

첸나이에서 현지인들에게 마리나 해변을 물어보면 누구나 다 대답해줄 만큼 첸나이에서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마리나 해변은 인도에서 가장 긴 해변 이면서 세계에서는 11번째로 긴 바다여서 더 유명하다. 하지만 마리나 해변에서 수영이나 일광욕을 즐기는 것은 위험한 사고가 날 수 있어서 금지되어있다. 그렇지만 가끔 보면 해변가 근처에 사는 현지인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면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리나 해변 근처에 가면 빈민촌 같은 곳을 볼 수 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현지인들이 해산물을 사는 조금한 시장들이 길에 쭉 펼쳐져 있다. 그리고 골목에 있는 집들을 보면 코코넛 나무 잎으로 만든 지붕 그리고 벽을 볼 수 있다. 그런 집들을 봤었을 때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초가집이 생각났었다.
마리나 해변

코코넛 나무 잎으로 만든 집
2004년도 마리나 해변에 쓰나미가 발생해 많은 약 206의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마리나 해변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 206명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침에 조깅을 즐기던 사람들, 관광객, 그리고 해변에서 크리켓을 하며 놀고 있었던 아이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쓰나미 이후 마리나 해변의 형태 또한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이로부터 약 8년후 2012년 내가 인도 첸나이에 거주 하고 있을 때 또 한번의 약한 지진과 쓰나미 경보가 났었다. 다행스럽게도 2012년에는 쓰나미는 일어나지 않았고 약한 지진만 일어났었다. 쓰나미 경보가 났었을 때 많은 현지 인도사람들이 마리나 해변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더더욱 쓰나미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2004년에 쓰나미가 온 후 마리나 해변

쓰나미가 지나간후 구출 작전
마리나 해변에서 차를 타고 5분에서 10분 정도 가면 바로 센 토마스 성당을 볼 수 있다. 센 토마스 성당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인 도마가 선교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해 사역 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첸나이 센 토마스 성당에 그의 시신이 안치 되어있다. 예상외로 인도 현지 사람들 중에서도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부활절 또는 크리스마스와 같이 기독교와 천주교 행사가 있는 날은 센 토마스 성당 근처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하다. 그래서 그런 시기에 특히 많은 거지들이 성당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첸나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 였던 EA 몰이 최근에 새로 지어진 피닉스 몰에 의해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타이틀을 뺏겨 버렸다. 원래 처음에 인도에 갔었을 때엔 EA 몰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상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후 피닉스가 생기면서 EA로 몰리던 사람들이 피닉스로 몰리기 시작했다. 피닉스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상점들과 음식점들 그리고 엔터테이먼트 시설을 가지고 있어서 현지 사람들은 물론 첸나이에서 거주 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좋다.특히 인도 뉴델리나 뭄바이에는 있지만 첸나이에는 없던 스타벅스 커피 점이 들어오고 켈리포니아 피자 키친이라는 맛있는 피자 집이 생겨서 더 인기가 좋은 것 같다.
EA 몰 안에 모습

EA몰 4개의 입구중 하나

오픈은 했지만 아직 공사중인
부분이 있는 새로운 피닉스 몰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인도의 주요 도시 1 - 뉴델리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중심이 서울이 된다. 하지만 인도는 정치 행정 수도는 뉴델리이고, 금융경제 수도는 뭄바이로 나눠져 있고 그리고 28개 각주 마다 주 수도가 따로 있어 각 주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이 집중되어있다.

제일 먼저 소개할 도시는 바로 공식적인 수도인 뉴델리이다.  

델리는 인도 북부의 대도시권이자 인도의 상업 공업 정치 중심지의 하나이다. 공식적인 수도인 뉴델리에서는 힌디어와 영어를 공통적으로 쓴다. 뉴델리를 수도로 결정한 뒤, 뉴델리와 올드델리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올드델리는 옛날에 마을이었지만, 영국 식민지 시대 때 뉴델리가 새로운 수도로 선정 되었다. 영국의 설계와 건설에 의한 신도시들을 뉴델리라고 부르고, 그 전부터 있던 지역들은 올드델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지역을 구분해서 부르지만 사실상 통틀어 뉴델리라고 부른다. 뉴델리에 살고 있는 인구 수는 약 302,363 명이다. 뉴델리의 날씨는 습기가 별고 대부분이 건조한 날씨이다. 뉴델리의 관광의 성수기는 11~3월이며 뉴델리 사람들에게는 건조한 겨울로 구분된다. 성수기에 비해 델리의 4~6월은 엄청난 더위가 계속되는 시즌이라 관광하기 힘든 날씨이다. 6~9월은 몬순 시즌이기 때문에 관광하기에 적합한 날씨는 아니다. 몬순 시즌은 우리나라로 치면 장마 시즌과 비슷하다.

뉴델리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은 바로 꾸뜹미나르, 인디아 게이트, 대통령 궁, 국립 박물관, 붉은 성, 사켓 (city walk) 몰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꾸뜹 미나르와 붉은 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꾸뜹 미나르
먼저 꾸뜹 미나르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술탄 꾸뜹웃 딘 에이백이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세운 탑이다. 이슬람교가 힌두교 왕조를 멸망시킨 것을 기념해서 세운 승전 탑이라고 할 수 있다. 꾸뜹 미나르의 높이는 72.5m 정도로 탑의 1층은 힌두 양식으로 2~3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독특한 형식을 갖춘 탑이다. 아주 옛날 꾸뜹 미나르에 관광을 가면 탑 내부의 380개 계단을 통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관광객의 압사사고 이후 현재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꾸뜹 미나르의 외국인과 내국인의 관람료 또한 놀랍다. 외국인은 25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4250)이지만 내국인은 1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170)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도 뉴델리에 가서 한번쯤은 봐야 하는 관광 장소이다.

또 다른 볼거리는 인디아 게이트이다. 인디아 케이트는 델리의 중앙 교차로에 서있다 그리고 인디아 게이트의 모양은 프랑스의 개선문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인디아 게이트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완공 하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높이는 42m에 벽면에는 약 8 5000명이 되는 참전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디아 게이트 주변은 공원처럼 되어 있어서 델리 시민들이 소풍 장소로 즐겨 찾는 곳이다. 지나가다 보면 잔디밭에 누워 각자만의 시간을 다르게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디아 게이트 




참전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벽




인디아 게이트에서 서쪽으로는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이 있다. 인디와 게이트와 대통령궁은 중앙도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대통령궁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어서 일반인들은 대통령 집무실 앞에 철문까지만 관람할 수 있다. 인디아 게이트와 대통령 궁 사이에는 국립 박물관이 있다. 인도의 역사와 종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이여서 역사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붉은 성 (Red Fort)
올드델리가 수도 이였던 시절 무굴제국의 왕궁으로 사용했던 붉은 성 (Red Fort)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 하나이다. 무굴제국의 황제이자 타지마할을 만든 샤자한이 수도를 아그라에서 델리로 옮기기 위해 10여 년 동안 만든 성이 붉은 성이다. 붉은 성 또한 꾸뜹 미나르처럼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관람료를 더 많이 내지만 무굴시대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관광지이다.  

사켓 (city walk) 몰은 우리나라의 롯데 백화점이나 신세계 백화점 같은 곳이다. 사켓 (city walk) 몰에 가면 세계 각 국에 있는 브랜드 상품 상점들이 있고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관 게임 장 등도 있다. 그리고 인도 현지 음식점도 있지만 서양 음식인 파스타와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 또한 같이 있다. 그 외에도 일반적으로 가정 물품을 살 수 있는 이마트와 같은 슈퍼 또한 같이 있다 그래서 뉴델리 현지 사람들에게도 사켓 몰은 인기가 많다.
 


2015년 4월 12일 일요일

인도의 결혼식

한국의 경우엔 특히 요즘엔 대학 동기, 직장, 다른 사람의 소개로 또는 정말 우연히 서로 만나 연애를 하다가 결혼 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서로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을 각자 부모님에게 소개하고 결혼 허락을 받고 순조롭게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도는 부모의 권위가 아직도 강해서 인도 젊은이들은 지금도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하는 경향이 크다. 인도에서는 애인 관계인 남녀가 결혼까지 성공하는 경우가 오히려 이례적인 경우이고, 현재까지도 인도전통을 따라 대부분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맞는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상대방의 카스트와 인종, 학력, 경제 사정 등을 엄격히 따진다. 가끔은 부모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신분과 조건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러한 결혼의 결과는 불행하게 끝나고 만다.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할 경우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고, 평생을 친부모나 형제들과 연락을 하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분 계층별 집단의식이 강한 인도에서 친척들이나 주위의 차가운 시선 또한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뜻을 따라 결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인도에서 결혼은 부모에 의해서 주도 되기 때문에, 인도에서 결혼을 하는 데 작게는 수백, 수천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 인도 결혼에서는 다우리라 불리는 결혼 지참금이 매우 중요한데, 집과 가전제품, 현금, 형편에 따라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 신랑의 탈것을 신부가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신부 쪽 출혈이 크다. 인도에서 결혼식을 3일 동안 치러진다. 첫날은 신랑이 신부를 찾아가는 길의 퍼레이드이고, 둘째 날은 가족끼리 보내며, 셋째 날은 지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인다. 보통 신부 집에서 치러지는 잔치는 밤에 시작해서 날이 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형편이 좋지 않으면 낮에 하는 경우도 있다. 밤늦게까지 하는 거리 퍼레이드에서 신랑은 전통 복장에 말이나 코끼리를 타고 행렬을 뒤따른다. 밤에 시작하는 피로연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신랑이 나타나고, 밤새 춤을 추며 결혼 파티를 즐긴다. 피로연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지만 정작 결혼식은 간단하게 바라문 승려가 만트라(성구)를 낭독하고 신랑 신부가 성스러운 불 주변을 도는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때는 총 7번을 도는데, 이것은 결혼 계약을 봉인하는 것으로 한 세대가 아닌 일곱 세대가 결혼한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혼식의 복장은 보통 한국처럼 웨딩드레스를 입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이 한복을 입고 전통 결혼식을 하듯이 인도 사람들도 전통의상을 입고 결혼을 한다. 신부는 인도의 전통 옷인 화려한 사리를 입고 무거울 정도로 여러 장신구로 치장한다. 옷과 액세서리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헤나이다. 결혼식 전에 팔이나 다리에 헤나를 그리는데 헤나가 오래 남아있을수록 신랑의 사랑을 많이 받고 색깔이 진할수록 시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풍습을 가지고 있다. 헤나 디자인은 붉은 기가 있는 갈색 헤나와 가는 선, 레이스 그리고 꽃무늬 패턴을 주로 사용하고 인도의 국조인 공작, 국화인 연꽃, 행운의 상징인 코끼리 등도 사용한다



2015년 4월 11일 토요일

인도의 장례식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의 장례식을 보면 항상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장례식이 이루어진다. 우리 나라의 경우 돌아가신 분의 영정 사진이 흰색 혹은 노란색 국화꽃으로 둘러 싸여져 있고, 장례식엔 검은색 옷이나 소복을 입는다. 장례식에서 돌아가신 분에게 인사를 할 땐 국화꽃 하나를 영정 사진 앞에 놓는다. 혹은 절을 한 후에 꽃을 놓기도 한다. 이렇게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와 상반되는 것이 인도의 장례식이다. 인도의 장례식은 매우 시끌벅적 하게 진행된다. 인도에서는 알록달록한 여러 가지 색깔 꽃으로 뒤덮인 관을 수레 위에 올려놓고 길거리를 행진하며 장례식이 진행된다. 또는 관을 차 뒤에 놓고 차 뒤에서 꽃을 길거리에 뿌리면 천천히 지나가기도 한다. 이때도 축제라 할 수 있을 만큼 듣기에 크고 경쾌한 음악을 틀어 놓고 지나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례식 행렬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는 매우 다른 감정을 인도인들은 경험한다.

우리나라의 흔한 장례식 풍경














인도에서 본 장례 절차 

인도 사람들은 또한 가능한 빨리 길일을 선택해 시신을 화장한다. 인도인들에게 화장은 소멸의 상징이자 카르마(Kharma)를 태워 없애, 돌아가신 분을 불멸의 삶으로 이끄는 의식이다. 화장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무렵 상주가 나무 막대기로 시신의 머리를 때려 깨뜨리기도 하는데, 이는 머리가 깨져야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유롭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화장을 한 후에 재를 모아서 강에다 뿌려 흘려 보낸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런 행위가 심각한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되어, 정부에서 규제하고 있지만 뿌리 깊은 인도의 관습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남자들이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집안 정리를 한다. 사람이 죽은 집안에 있던 모든 음식은 부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부 다 버린다. 아무리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구입 한지 얼마 되지 않고 상태가 멀쩡한 것 이라 해도 폐기 처분을 한다. 화장이 끝난 후 그 집안의 장손이 절차를 이어간다. 장손은 10일 동안 상복을 입고 죽은 사람이 머물렀던 방을 지킨다. 그 때 그는 혼자 있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 10일째 되는 날 죽은 사람의 후손들은 삭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삭발을 하는 것은 남자들에게만 해당된다.
힌두교도들은 머리를 삭발할 때 완전히 다 머리를 밀지 않고 정수리 아랫부분의 머리를 살짝 남겨두는데 이것은 시바(Shiba)신을 향한 것이라고 한다. 10일 째 되는 날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카드를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돌린다. 하지만 13일째 되는 날에는 10일째 되는 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13일째 되는 날 음식 제공 하는 것을 우리나라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탈상을 하는 날이다. 10째는 가까운 지인 가족들을 부르는 것이고 13일째는 아는 모든 지인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갠지스 강에서 본 장례 절차
화장 할 시, 남자인 유체는 흰 천으로 싸고, 여자일 경우엔 붉은 색 계통의 천으로 싸가지고 대나무 등으로 만든 관대에 싣고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노천 화장장으로 운구하여 친족 일동이 갠지스강의 물 혹은 그에 상응하는 성수로 유체의 입을 적시고 머리로부터 발까지 전신을 성수로 뿌려준다. 유체는 쌓여진 장작 위에 안치되고 생화로 장식 된 뒤 스님의 축복을 받는다. 유체의 주변을 다섯 바퀴 돌고 나서 근친자가 점화하는데 장작에는 버터 기름 또는 가솔린 기름을 부어서 화력을 더 세게 만들기도 한다. 화장한 유해는 가까운 강물에 뿌려서 흘려 보낸다. 죽은 이가 유아일 경우에는 화장을 하지 않고 유체에 돌을 달아 강물에 그대로 흘려 보낸다.  

인도의 경제

2013년도 IMF기준으로 세계 1인당 국민 소득 평균은 10,486$(US달러기준)이었다. 한국의 경우 1인당 평균 소득은 24,328$였는데 인도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1504$(US)이었다. 이러한 개인 소득액 분포와 다르게, 세계 총 생산액은 73,982,138백만 달러 중 한국의 총생산이 1,221,801백만 달러를 차지한 반면 인도의 총생산은 1,870,651백만 달러였다. 이런 수치적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인도는 개인이 가난한 나라이지만 한 국가로서는 놀라운 경제력과 성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à 자동차 시장
큰 배기량과 예쁜 디자인을 가진 차를 선호하는 한국과 달리, 인도 자동차 시장은 소형차가 주도 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잠시 주춤 했지만, 그 동안 거침없이 성장해 온 인도 자동차 시장은 여전히 소형차 중심이다. 최근까지 인도 자동차 시장의 80%이상은 오토바이나 릭샤 (3륜차)가 차지하고 있고, 승용차는 겨우 13%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의 승용차 판매 수를 보면 배기량이 1500cc 이하 아니면 만 2천 달러 미만의 소형 차량이 전체 판매량의 73%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활발하게 생산되는 모델이 배기량이 1200cc 이하인 소형차이다. 현재 인도의 국민 소득 수준을 감안 할 때 이러한 시장 구조는 앞으로도 꽤 지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à인도 자동차 시장의 특성
보통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승용차를 고를 때 안전성, 편의성, 디자인, 제품 인지도 등의 요소들과 가격까지 고려하여 꼼꼼하게 조건을 따진 후 구매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가격에 우선 순위를 두고 부가적인 요소에는 별로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 물론 인도의 부자들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가격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가격 외적인 요소들에 신경을 써 승용차를 구매한다. 오직 승용차를 구매할 때 우선 순위만 비교 했을 뿐인데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큰 빈부 격차를 느낄 수 있다. 최근 인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보면 1위는 일본과 인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마루티 스즈키가, 2위는 현대이고, 3위는 인도에서 100년도 더 된 타타 모터스가 차지하고 있다. 3위 이후로는 한국 자동차 회사 쌍용을 인수한 마힌드라 그룹, 일본 회사인 토요타 그리고 혼다, 그리고 미국 회사인 포드 등이 있다.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33482929

           à 인도 자동차 시장의 문제점
인도 자동차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름아닌 도로 인프라이다. 인도의 국가 고속도로는 전체 도로의 1.7%에 불과한데, 전체 물동량의 40%를 해결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도로망 정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델리, 뭄바이, 첸나이, 콜카타를 연결하는 마름모 꼴의 총 길이 5천여km의 고속도로 건설을 일본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일본 공사 중이다. 거의 완공 단계에 들어선 이 도로들이 개통되면 도로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정비되지 않고 관리 상태도 엉망인 도로문제가 심각하다. 1차선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량과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운전이 다반사이고, 드문드문 파인 구멍과 훼손된 도로는 대책 없이 방치되어있다. 사람이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엉망이다. 그리고 도로에 배수 시설이 제대로 건설 되어있지 않아 비가 많이 오는 몬순 기간에는 도로가 물에 잠겨 이동이 불가능한 일도 다반사이다. 몬순 기간에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 물에 잠기면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학교 측에서 등교를 못하도록 하는 경우 또한 종종 있다. 그리고 공장이나 사무실 부지로 쓰기 위한 땅들은 너무 비싸고, 수요에 비해 숙련된 인력이 턱 없이 부족 한 현상도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à 성장 가능성
모든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세계은행은 인도 경제성장률이 2년 후에는 중국을 따라잡을 것이라 전망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발표한 개혁 정책에 세계은행도 기대감을 표시한 샘이다. 모디가 발표한 새로운 정책을 통해 인도가 경제적 강국인 중국을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세계은행은 전망했다. 인도는 10년 넘게 중국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2년 뒤 2017년에는 중국을 앞지를 수도 있다. 2017년 중국 경제 성장률은 6.9%로 주춤하는 반면, 인도 경제 성장률은 7.0%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2017년 말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고 경제전문가들이 전망을 수정하게 만들 여러 변수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인도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가계와 기업의 신뢰도를 높일 개혁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인도는 기본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큰 자본들이 없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투자를 받아야만 성장 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다. 그래서 인도는 미국, 일본, 한국, 유럽연합(EU), 그리고 선진국 등에서 투자 유치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WorldBankIndia

http://www.scienceguide.nl/201501/india-set-for-pole-position.aspx